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
믿음이란 무엇인가? 물으면 알고는 있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편 믿음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실의에 젖어서 감옥에, 방구석에 홀로 있을 때 “애야! 힘들지 네가 원하는 대로 이루게 해줄께”하면서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습니다. 믿음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이야기 하나 궁금하기만 합니다.
믿음이라는 단어처럼 많이 만나고 이것처럼 오해가 많고 안 풀리는 숙제는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수천년을 믿음이라 여겼던 것을 없애려 오신 분입니다.
믿음 때문에 너희가 고통스럽고 싸움질을 하고 갈라지고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오해하고 있다고 바리새인과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동안 너희가 가졌던 믿음은 신념이고 무의식중에 ‘돈 있어야 행복해, 친구 잘 사귀어야 좋다. 나이 들면 건강이 최고야’라는 것처럼 세뇌를 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들이 진정 사실이면 돈 있고, 건강하고 친구 많이 있는 사람 다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무의식중에 조성된 신념을 믿고 있습니다.
믿음은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 있음을 있음 그대로 보는 것이 바로 믿음 생활입니다.
원래 상태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가며 그 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념도 아니고 고집도 아니며 형성된 자의식도 아닙니다. 믿음은 사랑의 세계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싸움도 하지 않고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건강하여야 행복하다는 믿음은 병이 나면 불행해 집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건강해도 행복하고 병이 나도 행복합니다. ‘병은 나를 건강하게 해주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니까? 내가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 그것을 알면 인생사 얼마나 쉽겠습니까!
그런데 무엇을 바라는 데 그 무엇을 바라는 줄 모르고 남이 바라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것으로 착각하며 사니 세상에 불행이 자기한테만 있습니다. 믿음은 정말 내가 무엇을 바라고 믿는가의 실체를 알게 해주는 이해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라는 말은 믿음이 없이는 내가 기쁘게 못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쁘려면 내가 기뻐야 합니다. 내가 속상한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기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기쁘지 못한데 어떻게 학생들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기쁘게 하느라고 자기는 쓰라림 속에 분통 속에 희생 속에 억울하게 살고 있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길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니 우리의 본래 형상은 사랑이고 행복이고 평안입니다. 믿음의 길은 즉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사랑하며 살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의 환자에게(요5:6) “낫고 싶냐?” 묻습니다. 환자는 낫고 싶어서 왔지만 그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바라는 것이 너무 오래돼 잊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연못이 동할 때 들어가는 것만 보고 1등 입수만 원했습니다.
병이 낫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네가 낫고 싶으냐” “예” 하면 됩니다. 믿음은 갖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받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은혜로 주어진 존재 변화인 것입니다.
내가 거듭났다 하는 것은 내가 영적인 존재이구나, 내가 하늘에서 보냄을 받았구나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의 실체와 본 면목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다 이루었다.”를 알게 됩니다.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갖는 순간부터 타 종교하고는 적이 되는 그런 믿음은 성서가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성서가 말하는 믿음은 우리를 사랑으로 행복으로, 이해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 타종교하고는 적이 된것은 자기 생각이고 신념이며 고집이요 편견입니다. 교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내가 나 되는 것입니다.
편협된 세계가 아닌 사랑 가운데 나오게 해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만이 내가 정말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의 실상으로 인도합니다. 믿음은 환상, 신념에서 내가 깨어나가는 것입니다. 정말 지식이나 실체는 , 실상은 다 그냥 있습니다. 다 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단순합니다. 단순해져 가는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그냥 못 먹는 열매로 보았는데 뱀이 와서 “그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높아질거야, 눈이 밝아 질거야”하니, 그때부터 선악과가 열매에서 다른 것으로 보이지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스럽고 탐스럽기도 한 어떤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보고 있던 그것이 다른 것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단순하게 보던 것이 복잡한 어떤 성격을 띄우고 있으며 다른 의미로 보입니다. 나를 다르게 만들어 줄 다른 존재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이 나를 인도하는 대로 가는 단순한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