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마25:34)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부처를 믿으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수염 난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21세기 교회와 성당과 절에서 일반적으로 통하는 진리입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오늘날에도 의심 없이 이런 말이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예비 된 나라에 가라고 하지 않고 받으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은 하늘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보이는 하늘은 이미 하늘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공입니다. 빈 하늘입니다. 하늘은 땅에 있고 사람 안에 있습니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는 은하수 건너편 어느 별에 세워진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그 어떤 공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유는 법안에 있는 것이지 법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현실을 떠난 그 어디에 이상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바울은 현실을 떠난 이상은 공상에 불과하다고 설교합니다. 현실 안에서 이상을 찾는 종교,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상을 현실화하려는 무모에서 벗어나, 현실속에서 이상을 찾는 순리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이 땅에서 이루자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요, 삶으로 제자들을 만나 친히 가르쳐준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내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가 내게 오고 임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 천국은 언제나 가까이 와있습니다.
천국은 가고 오고 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이미 있는 나라입니다.
물고기가 물이 아닌 그 어디에서 살지 못하듯이, 내가 하늘나라가 아닌 그 어디에서도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고 갈 수 없듯이, 내가 하늘나라가 아닌 그 어느 곳에서 살 수 없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물 안에서 소생하고 생멸하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태어나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고, 하늘나라 안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진실이요, 진정이요,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하고, 태어나고 죽고 하는 모든 이원성이 사라지고 있음만 있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존재하듯이 존재하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 충만히 있는 나라, 그런 나라는 그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안에 있고, 예수님 안에 있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감히 우리 사이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하늘나라는 이곳에 있거나 저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이 예수의 설교요 상속받으라는 말씀에 부응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공간이 아닙니다. 내가 나라요 내가 하늘입니다. 내가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내 가슴에 있고 내가 하는 일 안에 있습니다.
내가 가슴을 떠나 있을 수 없듯이 하늘나라는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일 밖에 내가 있을 수 없듯이 하늘나라도 일 안에 있습니다. 나의 가슴과 내가 하는 일 안에 있는 사랑과 기쁨, 창조와 빛이, 그런 삶이 하늘나라입니다.
生을 生에서 찾으면 그것은 生이 아닙니다. 生은 死에서 찾아야 합니다. 樂은 樂에서 찾으면 그것은 樂이 아닙니다.
樂은 苦안에 있습니다.
그 어떤 무덤에서 찾는 부활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내가 죽은 십자가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땅에 있고 내가 하는 일 속에 있고, 내 안에 있고 우리 사이에 있습니다.
그런 삶이 하늘나라에서 사는 삶이요, 그 안에서 사는 내가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땅에서 살다가 때가 되어 하늘에서 다시 사는 것이 부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