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4:26)
많은 성도들이 분, 즉 화내는 것은 성경에 써있으니 화를 내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내는 성도는 믿음이 적고 화를 안 내는 성도는 믿음이 좋은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보면 화가 나는데서 그치지 않고 죄를 짓는 데 까지 방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을 품지 말고’는 마음에 쌓아두어 나중에 되갚아 주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어서 말며 말고 라는 금지어를 쓴 것입니다.
죄 짓지 않은 화와 쌓아두지 않은 화는 사실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진 것이 화가 나서 보복이나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노력을 해 결국에는 이기는 화는 힘인 것입니다. 자기를 바꾸려는 의의 분노입니다.
결국은 좋은 뜻으로 화를 내는 것과 나쁜 뜻으로 화내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화라고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화는 힘이며, 나쁜 화는 죄와 앙갚음이 됩니다.
왜 화가 날까요? 저는 바깥에서 오는 요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남과 바깥을 바꾸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 화를 안내려고 노력하려고 결심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만 되면 화를 내며 분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행히 적당한 때가 되어서인지 화, 고통, 불행의 원인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깨달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잘못 알았구나 하면서 흘렸던 눈물과 감격이 아직도 흥분을 시킵니다.
잘못된 화에서 깨어나고 보니 그 일이 그 사실이 그 경우가 화날 일이 아니라 나를 대적하고 무시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 일이,
그 사람이 오히려 내 안에 있던 화를 비춰준 거울이요 스승임을 고백합니다. 고백할 때 신비함과 시원함, 가벼움이 밀려들었습니다. 김장배추를 돌로 눌러 놓은 듯한 나의 감정과 탁하고 답답한 실내에 한줄기 바람이 들어오듯이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분노 즉 화는 내 안에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표현이었습니다.
분과 화 또는 고통, 가난, 무시, 질병, 전쟁 등의 바깥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나의 신념체계가 무의식중에 어떤 사실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져 내가 감지 할 수도 없도록 체계적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예로 건강치 못한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짜증이나 원망 속에서 살기도 합니다.
알아차림 없이 받아들인 조항, 신념들이 우리 머릿속에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신념의 체계에서 벗어난 일과 사건과 말이 화를 내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이런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길을 세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쉬운 길은 우리 예수님이 주신 아주 가볍고 쉬운 길이 있습니다. 내가 결심이나 노력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만 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가만히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듣는데서 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들어야 합니다. 아무거나 들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나에게 체계화된 말로 듣는 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보는데서 깨달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내 믿음을 넘어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깨닫고 내 믿음을 그 안에서 조율해서 그분 뜻대로 사는 것 지혜와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지금 행복세계를 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잘못된 믿음, 신념을 나열하면 1. 내가 원하는 사람이나 물건들이 있어야 된다.
2. 상황이 바뀌고 다른 사람이 바뀌어야 나는 행복하다. 3. 행복은 미래에 있고 천국은 죽음 뒤에 있다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내일 행복할 것이며, 지금 살아서 천국에 살지 못하는데 죽어서 어떻게 가겠습니까? 속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천국이 지금 여기에 가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면 깨어나면 천국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화와 분이 힘과 열정이 되는 천국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