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5:26,29)
뉴스를 보다가 화를 벌컥 내거나 세상이 변하는 모습에 한 숨 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코미디 방송을 보면 금방 배꼽 빠지기 웃습니다. 이렇게 구원된 성도는 보이는 세상속에 빠져, 세상에 휘둘리며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수 만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세월이 빠르다고 하고 어떤 이는 세월이 안 가서 걱정도 합니다. 그러나 세월은 빠르지도 않고 느린 것도 아닙니다.
세월 자체에는 시간이 없고 세월이라 이름 붙인 그것만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는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다 일장춘몽이라 하지만 인생을 살다가, 알고 깨치면 일장춘몽의 인생은 없습니다.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선생님이 물 위를 걷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걸어오라고 허락하나 베드로는 몇 걸음을 걷다가 그만 빠지고 맙니다. 그는 알면서 빠집니다.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으시고, 베드로처럼 물에 빠지고 마는 바다는 세상입니다. 인생입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바다에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고 파도가 일때 잔잔한 파도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거센 광풍에 산 같은 파도도 있습니다.
파도가 무서워 미리 겁에 질리는 이가 있지만, 그 파도를 타며 즐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 쉼 없이 일어나는 파도와 같이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이라는 파도에 빠져 사람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 속에 속하지 않은 삶이 있으니 아들에게 주신 생명입니다.
인생은 生老 病死라는 파도가 있는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그 생로병사 파도에 지지 않는 삶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생로병사에 지지 않는다는 말은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듯이 생로병사를 넘고 즐길 수 있는 삶이 있음을 알려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生老病死를 예수님이 물 위를 걷듯이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요? 생(生)을 과학이라는 기술의 배를 타고 넘으면 넘을 수 있습니까요? 늙음(老)을 약이라는 배에 태우고 넘고, 질병(病)을 의술이라는 배에 태워 어찌 어찌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죽음(死)은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생명의 배에 영성을 가득 채우고 넘으면 됩니다.
파도를 넘고 넘다보면 파도를 어느새 즐기고 있어 生도 없고 老도 없고 病도 없고 死도 없다는 말입니다.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만 가득 남아있습니다. 생명이 너무나 그리운 때입니다. 생명의 뻗어나는 기운이, 생명의 샘솟는 약동이 아쉬운 때입니다.
올 여름에도 가뭄에 실망하고, 예기치 않던 많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를 보고 어떤 이는 구경만 하고, 어떤 이는 뛰어들어가 자기도 그만 함께 빠집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죽어가는 이를 구해오고 자기도 살아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하고 생로병사에 뛰어들어 그 생로병사를 넘어서 결국은 세상의 생로병사를 넘어선 생명이 있음을 보여준 생명의 본보기가 있으니 그 생명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아들인 나에게 주신 생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9시 뉴스로 대표 되는 세상에 빠지고 생각의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세상 파도에 허우적거리다가 마는 우리네 인생일지라도 예수에게 주신 생명을 감사함으로 부여잡고, 오히려 이래저래 빠져 사는 인생들을 구하는 것이 참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부터 파도에 빠져서 살다 나오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길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이 구원으로 우리에게 주워진 새 삶입니다. 새 삶을 사는 사람을 성경은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얻어진 생명을 가지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다가 그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 주위에 아직도 물에 빠져 헤매는 포기하거나 원망하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바로 새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물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과 세상의 파도를 즐기며, 넘나들며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삶입니다. 생명을 오늘도 주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