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삼상16:13중)
감동이 없는 삶은 생각하기도 싫은 밋밋한 삶이 사실입니다.
고호의 자화상을 보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신라의 조각가 김대성의 석굴암 앞에 서면 환희불이 되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스핑크스 앞에 서면 입이 벌어지고 폭포를 보면 마음이 시원해지며 탄성이 납니다. 감동입니다. 어떤 그림은 내 안에 있는 그리움을 그리고, 어떤 음악은 내 안에 있는 시련의 아림을 노래해주고, 어떤 조각품은 내 안에 있는 꿈을 조각해 놓습니다. 어떤 건축물은 내 안에 신비를 세워놓아 감동입니다. 씨앗이 꽃으로 피어나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 감동중의 감동입니다.
감동은 사람 마음을 동하게 하여 기쁨주고, 생각을 더하게 하여 희망을 일으키고 몸을 움직이게 하여 보람을 자아냅니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보고 감동을 합니다. 동해바다 일출하는 해에 힘이 생기고, 서해의 일몰에 고요를 느낍니다.
나타난 모든 것들이 감동입니다. 감동은 사람 속에 잠재해 있던 온갖 느낌과 생각들을 정화해줍니다. 사람은 어찌하든지 감동 속에 있어야 합니다. 메말랐던 남정네가 감동에 눈물을 흘립니다.
원래 태초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감동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감동이 곧 하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감동 없이 어찌 산에 오르고 감동 없이 어찌 바다에 가겠습니까! 그러할진대 감동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형벌 중의 형벌일 것입니다. 하와가 완벽한 곳에서 감동 없이 살다가 다른 일을 행하여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삶을 살기 위해 우린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지만 삶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감동을 느끼려고,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먹는 것을 금하고 마시는 것을 절제합니다.
명작은 그냥 저절로 생겨난 그 무엇이 결코 아니라 모든 명작은 분명한 주제가 있고 소재가 새롭고, 감동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런 명작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선생님을 찾고 찾습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수련에 수련을 거듭합니다. 그 끝에 베토벤이 나오고 고흐가 태어났으며, 감동을 알아가는 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몸에 소름끼치는 감동, 마음에 전율이 일어나는 감동에 정지하지 않고, 영이 감동하는 삶은 모든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영을 감동케 하는 하나님을 만나 감동을 느끼는 것은 창조성을 만나서 자율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베드로,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삶을 아름답고 거룩한 작품으로 바꾸어 산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실까? 붓다, 노자는 과연 어떤 분이었나? 우리와 다른 성정을 갖고 태어났을까, 우리에게 없는 그 어떤 신체기관을 더 갖고 계신 분이셨을까?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보다 어떤 면에서 학식이 적었고 정보도 적었고 신체적으로는 튼튼하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삶을 감동으로 가꾸신 분입니다. 일상을 거룩한 감동으로 승화시켜 사신 분들입니다. 매일 일상의 삶을 감동의 경지로 끌어올리신 삶의 감동이 있어도 많이 있었던 분들이다. 그들의 감동이 우리들에게 감동을 낳게 합니다. 그들에게 감동을 받은 우리는 모두 삶이 예술가들이 됩니다.
주제를 찾고 소재를 모아 감동 있게 살아야지 그냥 낙서하듯이 살 수 없고 장난치듯이 흘릴 수 없는 우리 인생이지 않습니까! 이제 나에게는 종교인으로서의 모습보다는 몸, 마음, 영이 감동된 삶의 감동가가 되고 싶습니다.
영이 감동됨으로 삶의 감동이 계속되는 멋진 삶이 나타나서 이웃을 감동시키는 것이 이웃사랑이고 전도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지구별은 이미 감동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도 우리만이 창조 할 수 있는 삶의 감동이 있지 않을까요? 삶을 감동으로 바꾸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가다듬고 몸으로 해보고 또 해보면 우리는 이미 감동 되어 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이후 목동의 삶에서 왕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끌려 가던 삶에서 자기 뜻대로 이끌어 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종의 삶이 아니라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우리는 자유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