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그리스도인
조철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적 인생(missional life)을 살아간다. 그래서 선교적 그리스도인, 혹은 선교인(missionizer)이라고 할 수 있다. 미주 한인교인들은 기독교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 기독교 사회는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정부와 결합된 상태로 박해와 탄압이 없는 크리스텐덤(Christendom)이다. 크리스텐덤은 중세시대를 거쳐 찬란한 기독교 예식문화를 창출했지만 신약교회가 보여주었던 선교적 정신과 삶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크리스텐덤의 교회는 선교를 다른 지역의 이교도를 개종하는 활동으로 여겨졌으며, 제국주의 통치이념과 결탁하여 선교는 식민지 사회를 확장하고 유지하는 거룩한 구실이 되어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 같은 선교가 크리스텐덤의 잘못된 유산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복음이 필요한 선교 현장은 복음이 없는 타지가 아니라 크리스텐덤 안에 있는 교회가 창궐한 기독교 사회가 되었다. 교회는 무기력하게 세속문화에 무너지고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선교적 교회 운동은 기독교 사회가 가져온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을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자각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가 타지가 아니라 나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하였다.
교회와 선교는 더 이상 이원론적으로 구별된 사역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선교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선교적 시각으로 읽혀져야 한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의 인생목적은 ‘하나님께서 선교하시니 나도 선교한다’라는 명제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 승천을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선교적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선교적 교회는 모든 교회의 구성원이 선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교인’임을 깨달은 공동체로 구성된다. 선교적 교인에게 삶의 터전이 바로 선교지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 문화, 환경이 선교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선교적 삶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확장해 나가는 삶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인해 확장된다. 한 사람을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의 방법이다. 세속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문화가 향기처럼 퍼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현현이다. 현실 세계이든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융합현실(MR; Mixed Reality)같은 인위적 공간이든 인간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공간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마음은 그 모든 곳에서 기초가 되고 우선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신학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교회의 지체가 되는 순간부터 삶의 모든 현장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면 된다(빌 1:27).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복음의 능력을 믿고 사는 것이다. 말과 행실과 태도가 세속적 사람과 달라야 한다. 존재하며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거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선교적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먼저 사랑하고 다가가고 섬기며 복음의 현현을 보여주신 것처럼 선교적 그리스도인은 가슴에 복음을 안고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도록 살아야 한다.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도록 살아야 한다.
구원의 징조는(빌 1:18)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나타난다.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곳에서 예배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며, 아무도 노래하지 않은 곳에서 찬양하는 삶이 어둠을 물리치는 빛으로 나타나는 구원의 징조이다. 빛은 그 존재만으로도 어둠을 이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는 바울은 내가 가면 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거리가 많아질 것이라고 위로한다(빌 1:26).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나 때문에 자랑할 것이 많은 삶을 살아야 한다. 나 때문에 행복한 가정, 나 때문에 같이 모이고 싶은 목장, 나 때문에 기쁜 교회, 나 때문에 살고 싶은 지역사회, 나 때문에 사람들이 밝은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면 나는 선교적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깊은 영향력을 끼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